눅16:19-31 부자와 거지나사로
조금은 오래 전의 통계입니다만, 동아일보 1997년 3월 자 신문에 미국타임지와 CNN의 조사기관이 공동의뢰해서 미국의 성인남녀 1018명을 대상으로 천국의 존재를 믿느냐는 질문에 81%가 천국의 존재를 믿는 다고 대답했습니다. 반면, 죄를 지은 사람이 가는 곳이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63%였습니다, 또 천국을 믿는 사람들은 선행만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6%인데 신에 대한 믿음은 34%, 혹은 둘다는 57% 그리고 천사의 존재에 대해서 93%가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은 천국과 지옥이 실재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고통 가운데 살았던 거지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고, 부자는 죽어 음부에 고통 중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죽음 이후에 사후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저는 이 시간 “부자와 거지나사로.” 가주는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고통 받은 이웃에 대하여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본문에서 부자가 죽음 이후에 음부에 떨어져 고통당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를 대비 시켜서 마치 부자는 다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부자가 되는 것이 죄인이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 부자가 잘못한 것은 부자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부자가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을 치장하고 사치하고 방탕하면서 이웃의 고통에 대해서 무관심으로 일관했기 때문입니다.
19절 말씀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여기서 자색 옷이란 그 당시 최고급 옷으로 소위 상류층만이 입을 수 있는 값비싼 옷을 말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파티를 열어서 맛있는 산해지미와 각종 과일과 해산 물등, 고가의 맛있는 진귀한 음식을 날마다 먹고 마셨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대문 밖에서 먹지 못해서 배를 움켜 지면서 거지처럼 생활하는 나사로에게 한번도 들어와서 자신의 잔치에 같이 초청한 적도 없고 권한 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유럽이 재정위기와 함께 미국은 재정절벽에 빠지고 최근에 글로벌 성장의 엔진이라 할 수 있는 중국마저도 잘못되면 성장률이 1%에 그칠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금융위기의 여파로 소득의 양극화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사회적으로 생활고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집단적 우울증내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소위 가진 자 가지지 못한 자.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갑과 을의 관계로 부가 한 쪽으로 쏠림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작은 임금으로 인해 생계가 곤란하여 하루하루 삶이 마치 본문의 나사로처럼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 노브리스 오블리제’ 이 커지는 시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후보자 시절에 서민정책 중에 하나가 ‘경제 민주화’였습니다. ‘경제 민주화’는 이 시대의 ‘시대정신’입니다. 사실 경제 개발이 국가경제의 목표였던 시절에 대기업들은 국가의 특혜와 서민들의 희생에 의해서 오늘 날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고 재벌이 되었습니다. 삼성이나 현대, SK, LG가 그렇습니다. 이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절에 어느 특정한 계층에만 성장의 과실을 누릴 수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대부분의 서민들에게 이러한 성장의 열매를 따먹고 골고루 분배되는 소득의 분배로, 사회 정의가 이 시대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이 정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가진 자만의 정부가 아니라. 소외계층과 서민들의 일상생활의 고충을 해결하는데 정책이 맞춰지고 재정을 투입되어야 서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어야,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행복한 대한민국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국가가 할 일입니다. 교회도 마찬 가지입니다. 오늘 날 한국교회가 세상에 비판이 되는 것은 작은 교회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대형교회, 소위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진 목회자가 예수님의 양을 마치 자신의 양인 것처럼 사유화 하여 자신의 욕망과 탐욕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의 공동체를 생각지 않는 데 있습니다. 그리하여 작은 교회는 복음 전파의 엄중한 사명에 앞서 자신의 생존을 위협받는데 있습니다.
오늘 날 한국교회의 위기는 대형교회의 탐욕과 방탕에 있습니다. 작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생각지 않고 공생 관계가 아닌 적자생존의 법칙으로 보고 마치 대형 마트가 영세 자영업자의 상권을 위협 하 듯 물불 가리지 않는 상업적 교회 운영의 행태에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세속적인 기관으로 인식하게 하여 교회의 본연의 영혼 구원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체로 보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공동체교회임을 인식한다면 대형교회들이 차를 돌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무슨 상업을 하는 단체가 아니라면 자신이 속한 동네의 가까운 교회에 나갈 때 작은 교회가 살아나고, 작은 교회가 살아남으로 한국교회는 미래가 있고 건강한 교회가 되며, 세상이 교회를 다르게 볼 것입니다. 대형교회는 고통 받는 작은 교회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대형교회가 작은 교회를 살아나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국교회가 이 세상으로부터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부자가 잘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집안에 있는 개에게는 좋은 음식과 맛있는 것으로 먹이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한 자신의 이웃인 가난하게 힘들게 살아가는 나사로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부자가 잘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도와 줄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서 도와주지 않했고 무심했다는 것입니다. 부자의 개들이 나사로의 헌데를 핧았다고 하는 것이 그것을 말해 줍니다. 집을 지키는 개는 배불리 먹었지만 나사로는 그렇치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심판 때에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했습니다. 무엇이 죄입니까? 자신이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4:17절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2) 인생의 대 역전이 일어납니다.
부자가 죽은 후에 떨어진 곳은 ‘음부’ 였습니다. 음부란 ‘하데스’ 혹은 ‘스올’이란 뜻으로 ‘깊은 웅덩이’ ‘지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지옥은 한마디로 고통스런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런 운지 나사로에게 자신에게 물을 찍어서 자신의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하는 것을 보면 뜨거운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마 5:22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지옥은 뜨거운 불구덩이 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뜨거운 불구덩이에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화산 활동이 활발한 화산은 하와이 킬라우 와에 화산이라고 하는데 인터넷에 2010년도에 화산 활동하는 동영상이 찍혀 있습니다. 그 동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주님이 재림이 가까이 와있음을 느낄 수 있고, 용암이 강물처럼 흘러내리는데 섬뜩한 느낌과 함께 지옥이란 이런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쇳물처럼 달구어진 뜨거운 액체가 강물을 이루고, 어떤 것은 불구덩이가 파여 있어서 지옥을 연상케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활동이 우리가 사는 21C에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호위호식하면서 이웃의 고통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았던 부자는 사후에 지옥에 떨어져서 뜨거운 불 가운데서 고통당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자신이 고통당하는 이 지옥에 남은 가족들이 오지 않도록 아브라함에게 부탁하고 남아 있는 가족이 자신이 있는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주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수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설령 죽은 자가 살아나서 전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때가 이미 늦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마음이 이미 굳어져서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완악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이 이 뜨거운 지옥 불에 들어가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로마시대는 기독교 박해가 오랜 기간 동안 이루어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네로 황제 때 극심한 박해가 이루어졌습니다. 사도베드로나 사도바울도 네로 황제 때 순교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네로 통치시대에 로마 시에 대화재가 일어나서 민중의 원성이 네로 황제에게 향하자 네로는 이 화재의 원인을 기독교인에게 뒤집어 씌워서 우리가 아는대로 원형경기장에 기독교인을 잡아놓고 그곳에서 사자의 밥이 되게 하거나 산 채로 로마의 원형경기장을 밝히는 횃불로 사용하였고 화형에 처해서 죽게 하였습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부자가 고통 받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인생이 역전되는 순간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수많은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다가 많은 환난과 고통과 억울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지구촌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이슬람 국가에서 불교국가에서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는 위험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들이 있지 않습니까? 2007년 7월 샘물교회 아프카니스탄 봉사단원 23명이 이슬람 국가인 아프카니스탄에 선교하러 갔다가 피납되어 고 배형규 목사 외 1인이 순교 당하는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봉사하러 가서 생명을 빼앗겼는데 같은 민족으로서 고통을 함께 해야 할 시간에 오히려 팔레반 측에 이들이 선교하러 갔다고 이메일을 보내어 배형규 목사가 목숨을 잃는데 동조한 무리들이 있었고 지금도 인터넷 상에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서슴치 않는 악행 자들이 이 땅에 있습니다.
그들이 비난 받은 것은 딱 한 가지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7:16-17 “그들이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것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3)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실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교훈 하시고자 하는 내용은 천국과 지옥이 실재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천국은 영원히 행복한 곳인 반면에 지옥은 영원히 고통스런 장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은 오고 갈 수 없는 곳이요, 구원의 기회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에 있는 것이지 죽음 이후에는 구원의 기회가 오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천국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 허무맹랑한 소리를 한다고 하여 아예 들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고대 철학자인 플라톤은 이 세상은 본질적인 세상이 아니고 이데아의 모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데아의 세계에 대해서 이 세상은 불완전한 세상이라는 것이다.
플라톤의 유명한 동굴의 비유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동굴에 갇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손과 발, 그리고 목이 묶여 있어서 움직일 수도 없고 앞 벽면만을 응시합니다. 이 사람의 뒤에는 횃불이 불타올라 사람들이 오고 가는 이 사람을 비추어 이 사람의 그림자가 벽면에 비치게 됩니다. 이 사람은 운명적으로 자신의 그림자가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치가 않습니다. 장작불 너머에 어딘가에 동굴의 출구가 있으며, 이 출구 너머에는 태양이 밝에 빛나는 밝은 세계가 존재한다. 플라톤은 참된 이데아의 세계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각하고 믿는 세계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각하는 이 세상은 참된 이데아의 그림자일 뿐이다. 이 사람이 자신의 실체를 정확히 보려면 동굴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이 사람이 자신의 밧줄을 풀고 동굴 밖으로 나올 때 비로소 동굴안의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이미 고대 철학자인 플라톤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이데아의 모방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성경도 말합니다.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고 합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았다고 말합니다. 고후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최근에 천국에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뇌의학 전문가이며 신경외과 전문의이고 명문 듀크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 메디켤 교수로 15년간 근무하면서 150편이 넘는 논문들을 게재하고, 국제의학 컨퍼런스에서 200회 이상 연구 발표를 한 이븐 알렉산더 박사가 쓴 ‘나는 천국을 보았다’ (Proof of Heaven) 라는 책에서 이 분은 박테리아성 뇌막염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인간으로서 사고와 감정을 통제하는 뇌 부위가 완전히 정지된 것이다. 그는 거의 죽은 상태였고 결국 의사들은 치료를 중단하고 생물학적 사망 판정을 내렸다. 그런데 7일째 되는 날에, 그는 눈을 떴고 다시 삶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현대의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의학적으로 뇌가 정지된 상태에서 자신이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신경과학계에 의하면 뇌가 정지되면 경험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임사체험자들의 공통점은 생명이 꺼지면서 어둠을 지나 빛의 세계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데 빛의 세계에 도달하면서 사람들이 형상과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과 가까운 친척들이다. 그리고 그곳은 빛의 세계로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우며, 새와 나무들이 있고 ‘빛의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분이 목격한 것은 천국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말합니다. 요한 사도가 말한 대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말을 실감케 합니다. 이 책은 순식간에 아마존 종합 1위, 뉴욕타임스 종합 1위, 퍼블리셔스위클리 20주 연속 종합 1위에 오르며 2013년 현재까지 베스트셀러의 기염을 토하고 있다.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 유럽을 넘어 아시아까지 전 세계 30개국 이상에서 책이 출간되고 있고, 곳곳에서 기록적인 열풍을 낳고 있다.
계시록22: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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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오직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부자가 왜 지옥에 갔습니까?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고, 이 땅에서 믿음으로 주님을 위해서 사는 자에게 인생의 대 역전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013년 6월 16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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