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말씀

자연을 사랑해야 합니다. 시147:4-11

gkffpffndi 2024. 9. 8. 08:10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교보타워 사거리에서 907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8살 고은 양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은 텃밭을 하는데 상추랑 옥수수를 키웁니다. 상추는 너무 더워서 녹아 버렸고 옥수수는 말라 비틀어져서 딱 한 개 밖에 못 먹었어요. 엄마한테 여쭈어보니 지구가 아프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시민들은 한 목소리 지금 말하고 지금 바꿔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가후에 변화에 대응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슈퍼 태풍 괴물이라고 불리는 야기가 중국을 덮쳤다. 야기는 일본이 제출한 것으로 염소자리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중국 남부에 덮쳐서 순간 최대 풍속240키로 달려가는 대형 트럭이 뒤집혀지고 이재민 수백만명의 피해를 내고 베트남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후변화, 기후 재앙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지구가 빠르게 더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는 야생 동물들의 씨가 말라가고 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이 신문은 우리나라처럼 좁은 국토에서는 인구밀도도 높아 야생 동물의 생존이 매우 불리하다는 것을 전제하면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럼에도 야생동물을 보호하기는커녕 보신용으로 생각하여 마구잡이로 그것도 빙산의 일각이라고 하니 이러다가는 한반도의 생태계마저 변하여 마침내 인간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지구상의 환경 문제는 대단히 심각한 지경에 놓여 있습니다. 이 같은 지구 표면의 변화는 대기의 공기층을 변화시키고 예기치 못한 홍수와 가뭄이 기습하고, , 공기, 흙 그리고 생태계의 변화는 결국 인간도 살 수 없는 지구의 황폐화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기후 변화로 점점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지구 온도가 1.5도가 올라가면 많은 생물들이 살 수 없고 해수면이 높아져서 많은 도시가 물에 잠기게 됩니다. 유엔의 보고서에 의하면 매년 지구의 생물 중 1%가 멸종되고, 앞으로 20-30년 후에는 현재 지구상에 생존하고 있는 생물 중 1/4가 멸종할 것이라는 예고도 있었습니다. 21세기 최대의 문제는 환경문제입니다.

 

1.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주관자이십니다

 

세계 문화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오늘의 자연 파괴와 이로 인한 환경 오염의 책임이 선진국에 있고, 이는 다분히 기독교 신학과 그 사상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창세기1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무차별적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킨 주범이 서구 문명이고 선진국이며 기독교 신학인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명제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루돌프 불트만은 "자연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 인간의 사용과 향유를 위해 인간에게 맡겨져 있다." 신약성서 신학에서 말했습니다. 20세기까지 이와 같은 불트만의 신학사상이 기독교 자연관에 관한 전통적인 신학의 대변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은 우주와 자연의 주() 되심을 포기하고 이 주권을 인간에게 이양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 분 자신이 만물의 주관자이십니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라(시편 24:1)."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요(신명기 10:14)." "토지를 영영이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위기 25:23)."

 

이 세상을 하나의 동산이라고 하면 그 주인은 하나님 자신이시요, 인간은 동산을 돌보고 관리하는 동산지기와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동산을 자기 마음대로 갈아엎거나 파헤치거나 과수를 뽑아 버리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나무를 돌보고 거름을 주고 가지를 전지하며 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연관이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으로 바르게 정립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인간의 삶, 피조물에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계십니다. 기계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창조주가 세상을 창조하고 자연법칙에 의해 그냥 유지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자연만물을 다스리시고 공중 나는 새와 들짐승과 바다의 물고기들을 먹이시고 운행하십니다. 8-9절에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도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주관자이시며 주인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섭리하십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연 동산을 잘 관리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과수원 주인이 과수원지기를 채용해서 과수원을 잘 돌봐줄 것을 부탁하고 멀리 떠났다고 합시다. 과수원지기가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과수를 잘 돌보고 가꾼다면 칭찬을 받을 것이지만 만일 그것을 뽑거나 불태우거나 거기에다 자기 마음대로 운동장을 만들고 축구장을 만들고 공장을 지었다고 하면 주인에게 책망을 듣고 곧 쫓겨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하여 선한 관리인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연을 잘 관리하지 않고 인간의 탐욕이 수단으로 이용했기에 자연이 파괴되고 인간에게 재앙이 다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인간의 구주이심과 동시에 만물의 구주이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요한복음 316절에 나오는 아주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세상"이란 인간만으로 제한한 것이 아니라 자연을 포함한 모든 만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심과 동시에 자연도 지극히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땅을 위하여 비를 주시고, 땅에 풀이 자라게 하시고,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도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또 시편 306절에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보호하시나이다."라고 노래했고, 요나서에는 하나님께서 니느웨성 사람들도 사랑하지만 거기에 사는 육축도 아끼고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성서 신학자인 게제는 구약시대에 안식일, 안식년, 희년 등을 지키게 하여 쉬게 한 것은 땅을 건강하게 하고 기름지게 하도록 하려는 창조 세계의 보존과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짐승과 생물에 도무지 손도 대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소와 양을 그 새끼와 함께 같은 날 죽이지 말라(22:26)..."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아서도 안된다(23:19)."는 말씀을 보면 인간이 이들을 선용하되 그 조화를 이루고 화평을 이루라고 하심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치 동산지기가 주인이 과수원지기에게 과수원을 맡기고 먼 나라로 떠나면서 동산지기가 먹고 그것으로 건강하고 즐기는 것을 얼마든지 기쁘게 생각하지만 아예 과수원을 없애버리거나 그 원형을 파괴하는 것은 결코 과수원 주인의 뜻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사랑할 뿐 아니라 피조세계를 사랑하고 동식물들을 사랑하고 자연보호와 환경보호에도 앞장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손자 온유네 집에 갔더니 자랑을 하는데 집안 한 구석에 햄스터와 도룡용을 기르고 있더라구요. 저는 무슨 도룡용과 쥐하고 비슷한 햄스터를 기르는가 싶었는데 의외로 손자는 아주 즐거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학원에서 돌아와서 먹이를 주고 그것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피조물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집에서는 거북이도 기르고 새도 기르고 물고기도 기릅니다. 저도 개를 좋아하지 않는데 아들 좋아 하니까 저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됩니다. 그런데 개는 충성스럽다는 말이 옛날 중학교 영어 참고서에 나왔는데 충성스럽다는 말이 맞는 말입니다. 우리 집 개 이름이 해피입니다. 나갔다 집으로 가까이 오면 어떻게 알고 주인이 오는 창문 쪽에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면 멍멍 거리면서 꼬리를 흔들면서 반겨줍니다.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을 사랑하십니다. 9절에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도다우리를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이요, 그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영장이신 인간을 위해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새와 동물과 들짐승과 자연을 아끼고 보존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3. 피조물이 고통 속에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 인간만을 구원하심이 아니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그 세상에는 만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새와 짐승과 물고기 등 모든 피조물입니다 골1:19-20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시기를 기뻐하심이라" 만물은 또한 구원을 필요로 하고 구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8:21-22"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 그렇기에 자연과 모든 생물들은 마지막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주님의 오심을 기다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만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죄로 인해 파괴된 자연의 회복, 만물이 회복되기를 피조물이 고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때 이웃이란 반드시 사람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전체의 사상을 보면 우리의 이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자연과 공기와 동식물과 흐르는 강물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책이 많이 읽혀져서 베스트 셀러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은 교인들이 그 말씀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의논하면서 문제를 예수님의 관점에서 바라 본 것이다. 지도자가 원칙적인 것을 발표하면 각 부서의 책임 있는 사람들이 연속적으로 회의를 하고 실천 방안을 수립합니다. 복음은 모든 피조물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연도 사랑해야 한다고,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은 인간 구원만이 아니라 자연에게도 기쁜 소식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마지막 주님이 오실 때 모든 피조물들은 이 고통에서 해방된다고 말씀하십니다. 8:10-22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의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그 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모든 만물들이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126절이하에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일어나거든 너희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

 

21세기 가장 큰 화두는 지후변화에 따른 자연 환경의 재앙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프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자동차 배기가스를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인 석유와 휘발유 사용을 줄이고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지구촌 온실화 효과를 막기 위해 탄소중립 유럽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탄소를 줄이고 탄소세를 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 이상 환경재앙으로 인해 지구가 소멸되지 않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자연정복적인 관점이 아닌 자연 친화적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를 사랑하고 새와 들짐승과 자연만물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연만물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이것을 일반계시라고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1:20절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괴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들에 분명히 보여 알려 졌나니 그러므로 핑계하지 못할지니라자연 만물, 즉 피조세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은 12세기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이다. 하나님의 신비를 묵상한 성 프란치스코의 마음은 깊은 흠승과 더불어 감사와 찬미, 신뢰와 기쁨, 감탄의 마음을 갖고 있다. 성프란치스코는 세상에 전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메시지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이다. 동료들은 성인을 하나님의 사랑에 도취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는 기도의 은총이야 말로 수도사가 추구해야 할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프란 치스코는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깊은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누었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장소에서든지, 사람이 있든지 없든지, 갑자기 길을 가다가 홀로 조용히 머물러 서서 하나님의 영감을 받고 기도하였다. 그의 기도의 특징은 특정한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형태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였다.

 

, 프란치스코는 자연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자연과 대화하고 새와 동물, 식물들과 대화 하였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사랑한 것이다. 자연친화적인 영성이야 말로 최고의 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자연을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모습으로 생각하였다. 동물과 식물이 천상적인 아버지의 창조물이며, 또 그 안에서 종교적 사유의 연쇄작용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프란치스코는 동식물을 사랑했다. 프란치스코에 있어서 모든 자연은 형제, 자매가 되는 사랑의 관계이다. 모든 피조물은 다른 피조물과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원하시며 바로 그렇게 창조하였다. 우리들은 이러한 피조물간의 연계성을 매우 오랫동안 등한시해 왔으며 망각해 왔다.

 

우리 인간은 신선한 공기, 깨끗한 물, 풀과 동물 없이는 더 이상 살 수 없습니다. 인간과 자연은 하나님의 몸안에 있고 그러므로 공동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병들면 자연도 병들고, 마찬가지로 자연이 병들면 인간도 또한 병든 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동물들이나, 바람이나 바위나 모두 형제자매라는 이름으로 불러 마치 그들이 동격인양 은근하고 부드럽게 속삭이는 관계를 보이곤 하였다. 프란치스코가 피조물을 그의 형제자매라고 부를 때 모든 피조물의 일치와 동등을 표현하였다. 산과 돌 태양과 달과 별 물과 불 흙 등 모든 피조물은 그들의 창조주인 하나님을 반영하는 도구들로서 하나님의 음성이고 말씀들이었다. 프란치스코는 자연을 통해서,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노래했다. 대 자연은 우리와 한 가족이었다. 형제태양, 누님 달, 늑대 형제, 누님 귀뚜라미, 종달새 형제 등 만물이 그의 형제자매였다. 이것은 범신론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과 자연을 혼동하지 않았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었다. 만물 속에서 하나님의 입김과 빛을 보는 인물이었다.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시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 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자지 못할지니라

프란치스코에 있어서 주 예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피조물 전체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야 말로 모든 피조물을 거룩하게 해 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들판과 새들을 바라보셨고, 당신 눈으로 축복하셨기 때문에 모든 들판과 새들은 프란치스코의 형제요, 자매가 되었다. 예수께서 그의 형제시며 그의 친구이자 그와 함께 모든 것을 나누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것 새도 동물도 작은 벌레들까지도 그를 사랑했다.

 

니카라구아(Nicaragua)의 혁명가 에르메스토 카데날( Emesto Cardenal)은 자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책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아침의 여명 속에서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모든 짐승들은 하나님을 노래한다. 화산과 구름과 나무는 우리에게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 한다. 모든 창조는 큰 소리로 하나님의 존재와 아름다움과 사랑에 대해 우리에게 계속하여 이야기 한다. 음악은 그것을 우리의 귀에 들려주며, 자연 풍경은 그것을 우리의 눈에 보여준다. ····자연은 하나님의 그림자, 그의 아름다움의 반사요 광채와 같다. 고요하고 푸른 바다는 하나님의 바다이다. 모든 원자 속에는 삼위일체의 모습,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모양이 머물고 있다. 내 자신의 육체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위해 창조되었다. 나의 모든 세포는 창조자를 향한 찬양이요 지속적인 사랑의 고백이다

 

한국교회 찬송가 새69,(33)은 성 프란시스가 쓴 시이다. 이 노래를 작사할 때 그는 죽음에 가까웠으며,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여 앞을 볼 수 없었다. 또 그는 무거운 병에 걸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와 달과 바람과 물, 하늘과 땅 이 모든 것을 자기 형제로 느끼면서 온 천하 만물 우러러, 다 주를 찬양하여라··· 저 금빛 나는 밝은 해, 저 은빛나는 밝은 달, 하나님을 찬양하라···” 21세기 종말론적인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환경의 재앙과 파괴는 우리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악과 탐욕으로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가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시 피조셰계를 잘 관리하고 가꾸고 보존해야 할 책임이 우리 기독교인 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은 인간은 물론 자연의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모든 만물은 창조주 하나님을 표현하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피조물로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할 때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에게 나아올 수 있고, 피조 세계 속에서 창조주의 사랑과 은총과 자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오는 작은 불빛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21세기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이 시기에 성프란시스 처럼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영성을 발견하고 피조세계를 사랑하고 자연 속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2024년 9월8일 새믿음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은혜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편에 설 건가/시5:1-12  (0) 2025.01.12
하늘양식/출16:1-12  (1) 2024.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