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양식/출16:1-12
이스라엘 백성은 10가지 재앙을 통해 430년의 애굽 생활을 끝내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가게 되었습니다. 애굽의 추격하는 군대 앞에서 홍해 앞에 서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의 지팡이를 통해서 기적같이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하셨고 이스라엘을 추격하던 애굽 군대는 홍해바다에 수장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죽음에서 구원받아 구원의 감격과 은혜를 찬송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전능자이시며 구원자이시며, 원수를 멸하는 자라고 노래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수르 광야를 거쳐 3일 만에 도착한 곳이 ‘마라’였습니다. 마라에 도착하여 샘을 발견하였지만 먹을 수 없는 물이었습니다. 물이 써서 먹을 수 없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은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기적 같은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나무를 물위에 던져라. 그랬더니 물이 달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라를 지나 엘림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 곳은 물 샘이 열 두 개가 있는 오아시스였고, 70그루의 종려나무가 서 있었기에 안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지는 엘림이 아니라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형편이 조금 좋아졌다고 그 곳에 계속 머무르고자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갈대야 우르를 떠나 하란에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데라가 죽자 그 때 비로소 하란을 떠나 가나안을 향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목적지는 엘림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이 목적지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내 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신 광야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신 광야에 이르자 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3절에 차라리 애굽의 고기 가마 곁에서는 고기를 먹을 수 있었고 떡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는데 여기 광야로 몰아내어 여기서 우리를 굶겨 죽게 하려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4절 그 때에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소리를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늘에서 일용할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양식을 거둘 것 이니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늘양식’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이 ‘하늘양식’이 무엇입니까? ‘만나’나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히브리어로 ‘만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뜻은 ‘이것이 무엇이냐?’입니다. 성경은 이‘만나’에 대하여 아침에 나가 보면 이스라엘 진영 바깥에 이슬이 내린 후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광야 40년 동안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 까지 하늘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린 하늘 양식인 ‘만나’입니다.
이 만나가 40년 동안 광야 생활 동안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얼마만큼의 양을 거두라고 말씀하십니다. 16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였느니라”
여기서 ‘한오멜’이란 양의 단위로 약2.34리터 쯤 된다고 하는데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많이 거두지도 말고 먹을 만큼만 거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많이 거둔 사람도 있었습니다. 모세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많이 거둔 사람은 벌레가 먹어 썩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적게 거둔 사람은 이상 하게도 부족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사람은 그 다음 부터는 먹을 만큼만 거두었지 욕심을 부려서 많이 거두지 않았습니다. 한꺼번에 많이 거둔 사람은 만나가 썩어서 먹지를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뭐라 하셨습니까?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니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매일 나가서 만나를 주어 오라는 것입니다. 시편78편 25절에 “사람이 권세 있는 자의 떡을 먹음이여 하나님이 식물을 충족히 주셨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광야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늘양식을 먹고 광야 생활을 부족함이 없이 지냈습니다. 구약은 신약의 예표입니다. 그러면 이 만나는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따라온 군중들에게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들은 예수님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자들로 예수님만 따라다시면 먹을 것은 해결 되었다고 생각해서 따라온 것입니다. 그들이 갑자기 31절에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신다 하니 그들이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말합니다. 이 때 주님은 35에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 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 온 산 떡으로 이 떡을 먹는 자는 죽지 않고 영생한다고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자신이 줄 떡은 세상의 생명을 위한 자신의 살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살과 피를 마시지 않는 자는 생명이 없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주님이 그를 다시 살리신다고 말씀하시므로 광야의 떡을 먹은 자는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 온 산 떡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63절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즉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먹어야 영이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을 받아 먹어야 그 영혼이 산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에스겔 선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1-3 인자야 너는 발견 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채우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의 지침으로 삶고 생명의 양식으로 삼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읽고 묵상하고 먹어서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하늘 양식을 먹은 사람은 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참 떡을 이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하늘에서 오신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58절에서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였고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만찬 말씀을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53-54절에서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는 자는 생명이 없고 대신 인자의 살과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린다고 하였습니다.
만나가 하늘에서 내려 온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이 땅에 내려 오셨습니다. 요8:22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하였습니다. 만나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을 광야 40년 동안 유지 시켜 주었던 것처럼 예수님은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생명의 떡이 되십니다. 광야생활에서 매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늘 양식을 먹었던 것처럼 매일 하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영적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살아 갈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 받을 수 있습니다. 성도는 육의 양식만을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먹고 묵상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며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골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래서 주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구원하신 목적은 노예로서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먹고 마시는 문제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 생활하는 동안 마실 물이 없으면 쓴물을 단물로 만드셔서 해결 하시고 떡이 없으면 하늘에서 떡을 내려 주시고 고기가 먹고 싶을 때는 메추라기 떼를 보내어 이스라엘 진영에 저녁에 내려 주시어 광야 생활 동안 아무런 부족함이 없게 생활하도록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신발이나 옷이 헤어 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광야생활 하는 동안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무슨 문제만 생기면 먼저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는 것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는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하셨습니다. 9절에 보면,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중에는 화가 많이 나셔서 메추라기 고기가 이사이에 끼여서 먹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질리도록 고기를 주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은 원망을 해야만 들으시는가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원망하지 않아도 우리의 필요를 먼저 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들이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하셨습니다. 이들이 애굽을 나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애굽의 고기 가마를 그리워하고 다시 돌아 가기를 원했던 것은 몸은 애굽을 빠져 나왔지만 아직도 여전히 그들의 정신은 애굽을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애굽의 생활과 정신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고는 있었지만 그들의 의식만은 여전히 애굽의 종으로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마음, 즉 의식이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공산주의자 칼 막스는 일찍이 사람을 지배하기 위해서 인간의 의식을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데오로기 사상을 만들어 세상을 지금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의식을 생각을 사탄에게 내주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광야의 이스라엘은 비록 하나님의 백성으로는 불리웠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아니었습니다. 교회에서 직분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내용입니다. 그 사람이 예수그리스도의 생각으로 가득 채워져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지난 목요일에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청주에서 제가 탄 차에 44명이 탔습니다. 차량을 인도하는 분이 교회 권사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제 건너편 좌석에 70대 쯤 보이는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그래서 거기 대부분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물었습니다. 권사님이세요 그랬더니 이 분 하는 말에 충격 받았어요. 돈 있으면 권사 되는 것 아니에요. 오늘날 세상이 교회를 이렇게 인식하고 있구나. 다시 말하면 형식에 내용이 채워져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로 충만해져서 우리의 인격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르구나, 권사님, 장로님 목사님은 다르구나. 존경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줄 믿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1세대 중 불평 불만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민 14:21-23). 오늘날 많은 성도들 역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는 있지만 결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비록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똑같이 좋아하고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을 똑같이 하는. 그래서 세상 사람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들을 결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도란 결코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란?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소망을 두고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마음과 영과 지식에 까지 새로워진 사람들입니다. 골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 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비록 현재의 삶이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고난이 와도 더욱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자신을 모든 위기 속에서 어려움과 환난 가운데서 구원해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에 등장하는 하나님께 대해 부요치 못했던 어리석은 부자를 보십시오(눅 12:13-21). 그는 양식이 쌓을 곳이 없을 만큼 풍성해지자 그 양식을 어떻게 보관할 것인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문제가 해결되자 마치 인생 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자신의 영혼을 향하여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오직 물질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결정적인 착각입니다. 그들은 인생의 가장 큰 문제가 물질을 확보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직 물질을 모으고 쌓는 일에 인생을 허비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인생에서 자신이 일용할 것 외에는 전혀 아무것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 물질적인 욕심 때문에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문제인 하나님을 알고 그를 섬기는 문제에 대해서는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물질입니까, 하나님입니까? 물론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 육체를 벗어나 살 수 없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 이것도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사람은 좀더 부요해짐으로서 더 풍성하고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돈이 있으면 편안한 삶을 보장합니다. 성경이 돈을 죄악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약속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전부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딤전6:10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들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우리가 입술로는 하나님을 알고 그를 섬기는 것이 가장 중대한 일이라고 말할 지라도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오직 물질이 우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결코 성공적인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질은 결코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을 줄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만족을 주실 수 있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I Love you, Lord.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며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고 그 분의 말씀을 내 배에 채우고 생명의 떡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므로 영생을 취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년 6월9일 새믿음교회 정영진목사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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