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란 무엇인가? 롬4:17-22
지난 해 5급 행정고시에 합격한 예비 사무관 515명을 대상으로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의 질문에 10명 중 8명은 ‘돈’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사회가 ‘물질 만능주의’ 내지는 ‘물신사상’에 물들여져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일찍이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황금’이라는 사실을 간파하시고 눅16장13절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 보다는 ‘돈’ 이라고 하는 것이 주인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일찍이 아셨고 이것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자리 잡기가 어려움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돈’을 올려놓고 그것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경계의 말씀을 전했는데 그것은 딤전6:10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바울은 “믿음과 돈”의 연관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돈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믿음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돈을 선택하든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위에 돈을 올려놓든지 아니면 돈 위에 하나님을 섬기든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러한 ‘돈과 믿음’을 시험하는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 첫 번째 성인 여리고성을 점령하게 되면 거기에서 거둔 전리품은 여호와의 것인 즉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다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하나님께 바쳐진 전리품 가운데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세셀, 금 오십 세겔을 도적질하여 자신의 장막 가운데 땅속에 숨겨 두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은 점령 했지만 작은 아이 성을 점령하는데 실패 하였던 것입니다. 한 사람의 탐심이 공동체가 패배하는 결과를 가져 온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도 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막 탄생하고 은혜가 충만하였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자기 것을 다 제 것 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은혜가 충만하다보니 자신의 것을 교회에 가져 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레위인 으로 구브로 출신인 바나바였습니다. 이 바나바가 성령이 충만하여 넘치는 은혜를 어떻게 할 길이 없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가난한 자가 많았습니다. 이런 교회의 모습을 본 은혜 받은 바나바가 교회를 위해서 자신이 오랫동안 소중하게 여겼던 밭이 있었습니다. 이 밭을 팔아서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서 자신의 밭을 팔아서 교회에 바친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이런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선교하고 세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바나바만 실명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은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과 물질을 내놓아서 공동생활을 한 것입니다. 이것을 본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자신들도 하나님의 교회에 자신들의 밭을 팔아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밭을 팔아서 땅 값을 계산해보니 너무 많은 것입니다. 생각보다 땅 값이 비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상의 했습니다. 우리가 판 땅 값이 너무 많으니 땅 값 일부는 우리가 쓰고 나머지 부분만 하나님께 바치자고 합의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베드로 앞에 가져왔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베드로가 그것을 알고 그에게 저주합니다.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고 성령을 속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 값 얼마를 속여 둘 다 그 즉시 하나님을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하나님께서 다가 올 후세들에게 본을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물질의 미혹을 받아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질이 하나님 앞에 나오는 데 장애물이 된다 이 말입니다. 요즈음 ‘가나안 성도’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거꾸로 하면 ‘안 나가’입니다. 교회를 안가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은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습니다. 그런데 교회공동체는 속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약100만 정도라고 합니다. 상당히 많은 수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대상으로 해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당신들이 ‘가나안 성도’가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교인들이 배타적이고 이기적이라고 하는 것이 40프로가 넘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이 하는 말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하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라도 틀렸다고 하지 말고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하고 다르다고 해서 비난하거나 틀렸다고 지적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 공동체가 완전한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 간에 상처가 되는 말이나 행동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공동체는 더욱 사랑의 공동체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그들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자신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 십일조나 감사헌금, 선교헌금 등 소위 물질을 교회에다 바치기 싫기 때문에 그렃치 않나 생각합니다. 즉, 물질에 대한 탐욕 때문에 교회 공동체를 떠나는 것입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물질 때문입니다. 교회에 가면 헌금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물질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뭐가 부족해서 여러분에게 물질을 요구합니까? 하나님은 학개서2장8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아니 천지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질이 없어서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음과 정성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시니 인간들이 자신들이 귀하게 여기는 것에는 물질을 아낌없이 사용한다는 것을 아십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아낌없이 사용합니다. 자신들의 건강을 위해서, 자녀들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사용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 하셨습니까? 누가 복음12장에서 한 부자 이야기를 마치면서 34절에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마음이 어디에 있는 건지 아셨습니다. 그래서 천국을 소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땅에다 재물을 쌓아두고 살아가지 말고 하늘나라에 쌓아두라고 하는 것입니다. 재물은 섬기는 대상이 아닙니다. 재물은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곳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출애굽기 24,25장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 아론과 훌과 장로들은 아래에 두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함께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엿새 동안 구름이 산을 가리우더니 일곱 째 날에 나타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사십일 사십야를 산에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시어 이르시기를 25장2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쁨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 지니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것이니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료와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호마노와 에봇과 흉패에 물릴보석이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상징적인 성소를 짓기 위함입니다. 성소를 지을 때에 출36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와서 하나님이 명령하신 일에 쓰고도 남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지 마19장에 나오는 부자청년처럼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호가호위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탐심으로 가득 찬 부자 청년에게 네가 정말로 영생을 원한다면 네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던 부자 청년은 많은 재물로 인해서 예수님을 떠났다고 말합니다. ‘돈’ 때문에 믿음을 잃어버린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물질에 집착하는 것입니까? 물질이 신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물질이 신입니다. 물질이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돈이 있으면 다 할 수 있습니다. 돈이 있으면 좋은 집도 차도 살 수 있고, 생명도 연장할 수 있고 돈이 있으면 결혼도 할 수 있고, 돈이 있으면 맛있는 음식도 사먹을 수 있고 해외여행도 갈 수 있고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사랑해서는 안되는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돈을 사랑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돈으로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데 정말로 사랑하는 가? 돈을 주어보면 압니다. 하나님이 물질을 주어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에 사용한다면 그 사람은 물질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선한 일을 하기보다 자신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보다 물질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서3장5절 하반 절에서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이런 물질을 사랑함에서 벗어날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기에 믿음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영생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물질보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할 때입니다. 돈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한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좋고 귀해도 돈 가지고는 천국을 갈 수 없습니다.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천국과 영생은 믿음을 가져야 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 사도는 벧전1:7절에서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믿음이라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가 구세주임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죽었다고 다시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할 것을 믿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시 이 땅에 재림 주로 오 실 것을 믿는 신앙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는 좌절하지 않습니다. 실망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살하지 않습니다. 이 믿음을 가질 때 희망을 갖게 됩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이 바로 이런 믿음을 가졌기에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이삭을 가졌지만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 하였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그 말씀을 전해들은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종 둘과 함께 하나님이 지시하신 모리아산에 사흘 길을 걸어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제단에 묶어 칼을 들어 죽이려 할 때에 하나님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칼을 대지 말라, 네가 이제야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노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아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지 말입니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물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지 말입니다. 그런데 이 때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히 11:19절에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신앙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17절에서 “그가 믿음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믿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믿음은 죽은 나사로도 살립니다. 문둥병자를 고치십니다. 회당장야이로의 딸도 고치십니다. 믿음은 거친 파도나 풍랑을 잔잔케 하십니다. 믿음은 귀신들린 자도 고치십니다. 이 믿음은 산을 옮기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어느 목사님한테 들은 실화 이야기입니다. 저희 서울 신학대학교 출신인 목사님께서 전라도 어느 섬에 개척하러 내려 가셨답니다. 목사님 내외분 모두 부모님들이 넉넉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데도 전혀 도움 받지 않기로 하고 공동묘지에다 천막을 치고 앞에 바다를 향해서 기도하기를 바다가 메꾸어 지도록 기도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앞 바다가 메꾸어져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그 교회는 300여 명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1장1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또한 6절에서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 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아브라함은 100세에도 하나님 자식 주실 것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 길 것을 믿었습니다. 19절에 그는 자신의 몸이 죽었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18절에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 바랐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은 기적을 행하시는 그 분을 믿기 때무입니다.
바보 새라고 불리는 새가 있습니다. 이 새는 날개가 3미터이고 물 갈키가 있어서 육지에서는 날아갈 수 없고 잘 걷지도 못합니다. 걷는 모습도 뒤뚱 뒤뚱하면서 우스꽝스럽습니다. 그래서 부쳐진 이름이 바보 새입니다. 그런데 이 새가 하늘을 높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 날은 폭풍우가 불고 날씨가 좋지 않을 때 다른 새들은 하늘을 날 생각도 못하고 숨죽이고 있을 때 이 바보 새는 절벽 끝에 서서 긴 날개를 펴서 바람을 이용해서 활강을 한다고 합니다. 3미터나 되는 날개를 펴면서 바람을 이용하여 절벽에서 뛰어 내립니다. 이 바보새는 한 번도 날개 짓을 하지 않고도 자신의 힘이 아니라, 바람에 기대어 나는 것입니다. 한 번에 5000키로 미터를 날아간다고 합니다.바람이 거셀수록 바람에 몸을 맡기며 무려 6일도안 날개 짓을 하지 않고 하늘을 날으고 두 달 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돈다고 합니다. 이 새의 이름은 알바트로스!! 세상에서 가장 멀~~리, 세상에서 가장 높~~이 나는 새, 알바트로스, 한 번도 쉬지 않고 멀리 날 수 있는 비결은 자신의 힘이 아닌 바람의 힘으로 비행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2016년도 절망의 소리만이 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하지만 염려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바람을 의지하여 믿음과 순종의 날개를 활짝 펴서 알바트로스처럼 비상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6년 1월17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 설교
'.........은혜의 말씀 > ...새믿음의 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도는 기적을 불러 온다 (단6:1-23) (0) | 2016.01.29 |
---|---|
감사는 기적을 불러온다 (0) | 2016.01.22 |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요21:1-14 (0) | 2016.01.08 |
성전에 심겨진 나무 시92:12-15 (0) | 2016.01.02 |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들 (3) 눅2 : 8-20 (0) | 2015.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