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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인생 (엡 5:15-·17)

gkffpffndi 2019. 12. 27. 12:18

지혜로운 인생 (5:15-·17)


전순영의시간을 갉아먹는 누에중에서란 시가 있습니다.

먹지 않으려고/ 입을 꼭 다물고 손을 내저어도 얼굴을 돌려도/ 어느새 내 입속으로 기어들어와/ 목구멍으로 스르르 넘어가 버리는 시간./ 오늘도 나는 누에가 뽕잎을 먹듯 / 사각사각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 쭉쭉 뻗어나간 열두 가지에/ 너울너울 매달린 삼백예순 이파리 다 먹어치우고/ 이제 다섯 잎이 남아 있다./ 퍼렇게 얼어붙은 하늘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어느덧 한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다섯 잎만 대롱대롱 매달려 있습니다. 다사다난 했던 2019년 기해년 한 해가 역사 속으로 흘러가고 경자년 한 해가 우리에게 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화살처럼 빨리 가는 인생길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가에 대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세월을 아끼는 자

세월을 아끼라는 말을 NIV 영어 성경에는 '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은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잘 살리라"는 의미입니다. 즉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는 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인생에게 있어서 기회는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하는 학생에 있어서 학창시절은 더 할 수 없이 배울 수 있는 기회입니다. 간혹 만학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정상적인 것은 아닙니다. 일할 수 있는 기회도 항상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하고 젊을 때 일할 수 있지, 병들고 나이 들면 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농사를 짓는 것도 씨를 뿌릴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습니다. 장사도 여름철에 잘되는 것이 있고, 겨울철 장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서 기자는 전 3:1-1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여기서 때, 시간 이라는 말은 가는 세월을 가리키는 데 헬라어에서는 두 가지 단어로 사용됩니다. 하나는 크로노스라는 시간과,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 라는 시간입니다. 크로노스란 수평적인 시간을 가리킵니다. 2019, 2020년 등 연대기적인 시간을 말합니다. 지나가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카이로스는 수직적인 시간,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사건이 발생한 시간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결혼기념일, 신앙적으로는 세례 받던 날, 예수 믿고 거듭난 날 등, 자신에게 있어서 의미 있고 뜻있는 시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세월을 낭비하지 말고, 허비하지 말고, 유수와 같은 시간 속에서 자신에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 가라는 것입니다.


세월의 빠름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10대는 기어가는 듯하고

20대는 걸어가는 듯하고

30대는 뛰어가는 듯하고

40대는 수레를 탄듯하고

50대는 말을 탄듯하고

60대는 나는 듯하고

70대는 바람처럼 스쳐가는 듯하고

80대는 번개처럼 지나간다.


모세는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康健)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하나님은 만인에게 똑같이 나누워 주신 것이 있는 데 시간 이라는 선물입니다. 하루 24시간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젊은이나 노인이나,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나 할 것 없이 똑 같이 주어졌습니다.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가치 있고, 보람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젊은 날에 허송세월하고 놀기만을 일삼으면 그의 앞날을 보장 할 수 없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잘못된 것은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쓰는 것이다 "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누가 당신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당신은 주저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로 놀러가자고 하면 당신은 쾌히 응할 것입니다. 사람은 시간을 빌려주는 것을 쉽게 생각합니다. 만일 사람들이 돈을 아끼듯이 시간을 아낄 줄 알면 그 사람은 남을 위해 보다 큰일을 하며 크게 성공할 것입니다."


프랑스 사상가인 몽테뉴가 한 말입니다. 시간은 돈을 주고 살 수 없고, 저축할 수 없으며, 누구도 붙잡아 둘 수 없고, 남에게 빌려주거나 빌려 쓸 수도 없습니다.


인생을 하루 24시간에 비교한 것이 있습니다. 인생의 시작을 오전 7시로 해서 밤11시까지를 나이별로 맞추어 보았더니 15세는 오전 1025, 20세는 1134, 25세는 낮 1242, 30세는 오후 151, 35세는 3시 정각, 40세는48, 45세는 516, 50세는 625, 55세는734, 60세는 842, 65세는 951(누워야 할 시간입니다.), 70세는 밤 11시였습니다. 70세를 넘으셨다면 12시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시간은 지금 어디쯤 있습니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시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사람은 시간 속에서 태어나고, 시간 속에서 성장하고 살아가다가, 마침내는 시간 속에서 어느 날 죽습니다. 사람은 모두 태어날 때 각자가 다르게 하나님으로부터 시간을 배당 받아서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50년의 시간을 받아 태어난 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70년의 시간을 받아서 태어난 분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는 90년을 받아서 태어난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이는 100년의 시간을 받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그 받아온 시간만큼 세상에 살면 그 다음에는 모두 죽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받아 가지고 온 시간이 얼마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의 끝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 시간의 끝이 내일인 사람도 있습니다. 또 그 시간의 끝이 모레인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1년밖에 남지 않은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은 사람도 있습니다. 결국 우리들도 그 시간이 언제인지 알 수가 없을 뿐이지 이렇게 살다가 언젠가는 우리들 자신도 죽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을 때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데 그때 하나님은 그렇게 물으신다고 히브리 사람들은 말합니다. "너는 내가 준 시간을 가지고 세상에서 어떻게 살다 왔느냐".


그래서 우리는 모두 시간을 맡은 청지기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시간들을 잘 관리하고, 사용하고, 소중히 살아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인생을 아무렇게나 마구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2.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입니다


17절에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주님의 뜻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우리에게 맡기신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선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난 1년 동안도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 왔습니다. 자신들의 삶이 더 행복하고, 남보다 더 누리고 즐기기 위해서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쉬지 않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 보면 남보다 일찍 출세하기도 하고, 좋은 집도 마련하고, 고급 승용차를 타면서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인생의 희열과 환희를 만끽 하면서 자신은 남보다 성공했다. 고 자부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부나 명예, 권력이 우리의 행복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대로 대통령을 지내고 재벌을 경영했던 사람, 고위 공직자나 교수, 인기 연예인들이 하루아침에 극단적인 방법으로 인생을 포기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우리가 볼 때 그들은 갖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이미 누리고 가져 봤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행복을 보장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724-27절에 보면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자에 대하여 말씀하기를 지혜로운 자는 반석위에 자신의 집을 짓는 자이지만, 어리석은 자는 모래위에 집을 짓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집을 짓는 데 모래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지혜로운 자란, 하나님의 말씀위에 자신의 인생의 집을 짓은 것을 말합니다. 인생의 집을 지을 때 세상적인 지식이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위에 자신의 목적과 가치관을 세워 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모래위에 집을 짓는 자란, 세상적인 방법과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인생의 성공의 집을 짓겠다고, 내 인생이니까 내 힘으로 살아보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살아가는 자입니다. 즉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분을 알고 그 분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입니다. 사도바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공부도 그 당시 최고의 스승인 가말리엘의 제자였습니다. 오늘날로 세계 최고의 대학을 나온 것입니다. 자신의 학식이나 가문을 자랑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변했습니까?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버리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삶의 목적과 가치관이 180도로 바뀐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한 삶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삶으로 바뀐 것입니다. 자아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의 삶으로 변했습니다. 땅이 전부라고 생각 하던 삶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삶이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던 삶에서 그리스도가 전부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시편기자도 시84:10-11 "주의 궁정(宮庭)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 (帳幕)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恩惠)와 영화(榮華)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누가복음 1216-21 에 보면 한 부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부자가 어느 해 소출이 많아지자 자신의 곳간을 헐고 크게 지어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두고 말하기를, 내 영혼아 내가 여러 해 동안 먹을 것을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말할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말씀하십니다.


탤런트 김혜자 씨가 쓴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라는 책에 나오는 텍사스의 한 부자이야기입니다. 그가 어느 날 성직자를 집에 초대해서 잘 대접한 후 그 높은 장소에서 동쪽 문을 쫙 열면서, 기름펌프가 펑펑 올라오는 유전이 자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쪽을 열면서, 소떼가 있는 저 목장도 자기 것이랍니다. 또 이쪽저쪽 창문을 여니, 골프장과 호텔이 있었습니다. 다 자기 것이라며, 부러울 것이 없다고 합니다. 40년 전 맨손으로 텍사스에 와서 일군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성직자가 가까이 가서 어깨를 만지며 말했답니다. 그런데 위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는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육신을 위해서는 수고하고 애쓰고 가꾸고 열심히 일합니다. 많은 시간과 물질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서 많은 것을 거두기를 원합니다.


사도바울은 썩을 것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것을 위해 수고하라고 말씀 합니다. 지난 한해동안도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동분서주 하면서 뛰어다녔습니까? 영원한 것을 위해서 얼마나 수고하고 뿌렸습니까?


이 세상에서는 참 행복과 참 소망은 없습니다. 우리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간이 살아가면서 없어서는 안 될 귀한 것은 돈 주고 살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물이나 공기 산소 같은 것들은 돈으로 산다고 하면 엄청난 값을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귀한 것들을 그냥 주십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 있어서 참 행복과 참 소망은 이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온 사람가운데서 가장 많이 가지고 누리고 즐긴 사람이 누구인 줄 아십니까? 다윗의 아들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다윗 자기아버지의 덕을 많이 본 사람입니다. 성전 건축도 아버지가 재료를 다 준비 했습니다. 아버지 덕에 무역이 활발하여 그 당시 솔로몬이 사용하는 그릇이 다 금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금을 돌처럼 흔하게 여겼습니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었습니다. 솔로몬과 시바여왕이란 영화가 있듯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찾아온 스바 여왕이 소문보다 더하다고 놀라워했습니다. 그가 잠언 3000언을 말하고 동물이나, 식물 등 모든 분야에 있어서 학식이 출중하였습니다. 또한 후처가 100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소위 세상적인 다 누린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말년에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어떻게 고백했습니까?


전도서11-8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8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창세기 47장에 보면, 야곱이 애굽의 바로를 만났을 때, 바로가 야곱에게 당신의 연세가 얼마입니까?”라고 묻자, 야곱이 대답하기를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입니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메흐메트 오르한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1차 세계대전 때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의 연합국에 대항하는 독일,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에 가담 했다가 전쟁에서 패하고 제국은 산산 조각이 났다. 이후 터키 공화국이 1923년에 새롭게 탄생한다. 터기 의회는 192433일 특별법을 만드러 오스만 황실에 책임을 물러 24시간안에 조국을 떠나 50년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이후 황족들은 재산을 압류당하고 생활용픔만 챙겨 쫒겨났다. 파리에 정착한 이들은 돈이 떨어지자 가족들이 생활전선에 나서기 시작했다. 오스만제국의 황태자 후계자인 오르한은 영민해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어어 스페인어 헝가리어 아랍어 포르투칼어 터키어 등 다양한 언어를 구사했으며 조종사 자격증까지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빵 한개 커피한잔을 마실 돈이 없어 레바논에 가서 택시기사를 하고 브라질에 가서는 막노동을 하다가 다시 파리로 와서 청소부 경비일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어 주는 일, 공원묘지 관리인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어렵고 고단한 생활을 하면서 황태자는 소원 한 가지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는 일을 마치면 오를리 공항 3층 출국장에 있는 카페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한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그곳에 들려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곤 했다고 한다. 터기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가 뜨는 공황,20여년을 매일 카페에 앉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조국을 그리며 그 쓸쓸한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노쇠해진 그는 연금160달러의 연금으로 생활했다. 이 사실이 신문을 통해 터키 국민에게 알려졌고 죽기 전에 조국을 방문할 기회를 주자는 동정이 일어났다.


1992년 드디어 조국을 방문했다.83의 나이에 터키로 63년 만에 돌아왔다. 터키에서 황태자의 모습이 생중계로 전달되면서 사람들이 연민을 갖게 되었다.역사의 모든 책임을 황태자에게 전가 하는 것은 가혹하다. 남은여생을 조국에서 보낼 수 있게 하자는 여론이 우세하면서 결국 터키 정부도 별장을 마련해주고 여생을 편히 지낼 것을 요청했으나 그는 모든 제안을 거절하고 다음 날 파리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국민들의 호의를 저버린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그는 짧게 대답했다.

나는 나라를 잃은 죄인입니다. 더욱이 70년 동안 이 나라에 세금 한 푼 내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오스만 제국의 자존심과 명예에 흠집을 내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용서와 사랑만으로 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니스에 있는 자신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생을 마감했다.


146: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무수히 변화무쌍 하는 모습 속에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 그가 지혜로운 자요, 복 있는 자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나의 삶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과연 얼마나 지혜로운 삶을 살았는지, 삶을 낭비하지는 않았는지, 헛된 일에 분주 하지는 않았는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면서 살았는가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끝이 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 시간이 점점 다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피곤하십니까? 무슨 일로 고통 받고 있나요? 지나간 날들을 돌아보면 후회스럽고 가슴 아픈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을 잊어야 할 시간입니다. 후회만 할 수 없습니다. 원망만 할 수도 없습니다. 내년이라는 희망의 새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며, 시간을 아끼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1229일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