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무지개 언약 (창9:1-17)
예배와 무지개언약 (창9:1-17)
601년 1월 1 일에 땅위에서 물이 걷히고, 2월 27 일에 땅이 마르니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시기를 16절에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노아와 그 가족들과 땅위의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제일 먼저 한일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요즈음 폭우나 집중호우가 퍼 부으면 그 지역은 엄청난 재산피해와 함께 인명피해는 물론이고 도로가 유실되고 논과 밭이 침수되고 비닐하우스가 가라앉아 과실 농사를 망치게 되어 장마 뒤에 얼마나 할 일이 많습니까? 가재도구부터 시작해서 청소를 해도 한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노아의 대 홍수가 지나가고 난 이후의 지구는 엄청난 재난이 임하여 홍수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변모되었을 것이고 먼저 할 일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당대 의인이요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는 먼저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무너진 집을 먼저 짓는 것도 아니요, 가재도구를 치우고 주변정리를 하는 것 보다 이 엄청난 재난 속에 자신과 자신의 가족, 그리고 수많은 짐승과 새들의 생명을 보존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는 일이 우선임을 알아 감사의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노아는 먼저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정결한 것을 택하여 제물로 하나님께 온전히 태워서 번제로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번제로 제사를 드렸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릴 때 마음의 자세는 항상 우리는 죄인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구속의 은혜를 맛볼 수 없습니다. 구원의 감격을 누릴 수 없습니다. 노아도 모든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무너진 모습을 보고 그 가운데서 자신의 가족과 방주 안에 짐승과 새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제사를 흠향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 임을 고백하는 그 제사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를 푸셨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받으신 하나님은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 않으시고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를 드리니 하나님의 마음이 완전히 바뀌어 노아와 그 가족들을 축복하시는 것을 봅니다. 이렇듯 예배가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흠향하시는 예배를 드리면 저주가 물러갑니다. 가난이 물러갑니다. 병마가 물러가고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제사란 하나님을 기억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중요한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먼저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기억한 노아에게 복을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오시는 시간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기억하는 자를 잊지 않으십니다. 예배시간은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때입니다.
우리가 축복받는 최대의 비결은 예배를 우선하며 사는 생활 입니다. 삶의 중심에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때 주의 성령이 임하시고 찾아와 주시고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무지개 언약을 주셨습니다.
1. 언약을 세우리니
창세기 9장은 하나님께서 노아 대 홍수 이후에 당대 의인이요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에게 언약을 맺으시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언약을 ‘무지개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언약이란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약속, 혹은 계약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Covenant'라고 합니다. 성경은 계약의 책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계약 체결자이시고 피조물인 인간은 계약의 당사자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철저하게 계약에 의해서 이끌어 가시고 계약의 당사자가 계약에 충실 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사실 이러한 계약은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지배국가와 피지배국가 사이에 흔하게 있었던 일입니다. 하나님은 철저히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시고 계약을 이끌어 가시며 계약에 충실 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성경을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지 않습니까? 구약이란 말의 뜻은 옛 언약이라는 말이고 신약이란 말은 새 언약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언약, 즉 계약에 의해서 이끌어 가십니다.
창세기 1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5장 1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자신을 현현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아브람에게 상속자가 있을 것을 말씀하시면서 밤하늘에 별들을 바라보게 하시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 질 것이라고 말씀 하시면서 반드시 이 약속이 이루어 질 것을 계약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서 삼 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오게 하고, 아브라함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중간을 다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녁 해 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면서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이로써 언약의 체결자인 하나님과 언약의 당사자인 아브람과의 계약이 체결된 것입니다.
이러한 언약 체결 방범은 고대 근동지방에서 국가 간에 흔히 체결된 방식이었습니다. 고기를 쪼갠 이유는 만약에 이 언약을 불이행 할 시는 쪼갠 고기처럼 죽음을 각오해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창세기 17장에는 아브람이 99세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계시하면서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고 하시며, 다시한번 언약을 상기시키면서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너와 나 사이에 맺은 언약대로 반드시 내 자손이 번성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언약을 지킬 것을 말씀하시면서 자손 대대로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고 하면서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7장12-14절에서 모든 남자는 포피를 베고 집에서 난 자나 이방인을 돈으로 산자들도 할례를 받아야 하고 만약에 할례를 행하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게 될 것인데 그것은 내 언약을 배반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의 언약을 이행하기 위하여 99세에 할례를 받았고 그의 아들 이스마엘은 13세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 할례는 언약의 표징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의 표지입니다. 즉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할례의식은 사도바울이 말한 대로 육신의 할례가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정결의식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백성들과 언약을 세우시고 이행하시고 언약의 당사자에게 요구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하나님은 이러한 언약대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셨고 이행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시기를 9장 11절에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왜 이러한 언약을 말씀하셨겠습니까? 여러분 한반도에 시간당91미리, 300미리 폭우가 내려 엄청난 피해를 주고 지나갔습니다. 과수농가나 양식업을 하는 농부나 어부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홍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전 지구에 사십주야가 내리고 150일 동안 물에 잠긴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노아가 이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심판의 준엄함과 두려움 속에 불안함을 가지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노아에게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고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가족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심으로서 당신은 계약에 충실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는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당신의 언약을 반드시 지키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증표로, 즉 다시는 물로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상징으로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시겠다고 하였습니다. 비가 온 뒤에 우리는 어렸을 적에 일곱 색깔 무지개가 하늘위에 화살처럼 둥글게 걸려 있던 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린 마음에 무지개가 나타나면 신비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여 마냥 그날은 기분이 좋은 날입니다. 그런데 제가 20년 전에 이스라엘에 성지 순례 간적이 있었는데 성지 순례 중에 그 날이 비가 왔던 것 같습니다. 버스로 여행 중에 넓은 들판위에 무지개가 펼쳐져 있는데 얼마나 큰 지 온 하늘을 덮어서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지개를 만날 때 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약속하신 말씀 다시는 물로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습니다.
요즈음 전 세계적인 이상기온과 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홍수와 폭우와 가뭄로 인한 피해가 심하지만, 그래도 노아홍수와 같은 종말적인 물난리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지개는 반드시 비가 온 뒤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비가 온 뒤에 대기 중에 물방울이 아직 남아 있어서 빛이 통과 할 때에 빛이 나누어지면서 무지개가 형성되어진다고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홍수 뒤에 펼쳐진 이 자연현상은 하나님의 언약의 상징이요, 미래에 대한 희망이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사랑의 표시오 꿈이요 비젼이요 희망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과 비젼이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말은 우리가 깊게 생각해야 할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여행하는 동안 바람 불고 구름이 낀 흐린 날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느 때는 우리 앞길에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시커먼 먹구름이 가득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구름은 어두움과 환난, 그리고 고난을 상징합니다.
물론 출애굽기 19장 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빽빽한 구름 속에서 자신을 나타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사십년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그런 의미와는 달리 해석하고 싶습니다.
13절에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우리 인생은 걸어가면서 누구나가 일곱 색 깔 무지개 같은 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결혼을 하는 청춘 남녀들은 이상적인 가정생활과 무지개 같은 결혼생활을 꿈꿀 것 같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빌게이츠나 애플의 창시자인 스티브 잡스는 아닐 지라도 사업성공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하지만 구름 속에 감춰진 무지개를 잡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에 벽에 부딪혀 좌절과 절망을 하게 됩니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무지개가 아니라 먹구름이 나타날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구름 속에 무지개를 걸어 두셨듯이 고난과 역경의 파도를 넘기만 하면 희망의 무지개가 나타납니다.
성도 여러분! 노아와 그의 가족은 구름이 모여들고 비 비람이 칠 때 홍수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비가 그 친 뒤에 찬연하게 비치는 무지개를 보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위로와 소망을 가 질 수 있었습니다.
3.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지 아니하리라.
노아홍수는 인류역사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유일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최초의 지구가 대홍수로 인한 지각변동과 지진과 해일로 인하여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변모하였습니다. 노아 앞에 나타난 세상은 홍수이전의 세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죄악에 대하여 분명하게 심판하시는 재판관임과 동시에 자신의 백성에 대하여 한 없이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즉 무지개의 언약의 뜻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이 심판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임을 예표 하는 사건이 광야에서의 구리 뱀 사건입니다. 민수기 21장 4-9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호르 산 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 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이 상하여 하나님과 모세에 대하여 원망하여 어찌하여 우리를 이 광야에서 죽게 하려느냐 이곳은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하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을 들으시고 불 뱀 들을 보내어 백성들을 물게 하시므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원망하여 하나님께 범죄 하였사오니 용서하시고 이 불 뱀 들을 떠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매달고 그것을 바라 본 자는 모두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한 자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놋 뱀을 쳐다 본 자는 모두 살았다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놋 뱀 자체에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상시하거나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열왕기하 18장 4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이 놋 뱀을 부수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많은 시간이 경과 했음에도 사람들이 이 놋 뱀을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이것을 부수며 말하기를 이것은 '느후스단(놋조각)'이라고 말합니다.
즉 불 뱀에 물린 사람들이 장대에 달린 놋 뱀을 쳐다 볼 때 죽음을 면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이요 생명이지만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저주요 심판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해석에 있어서 유형론 자들은 이 놋 뱀 사건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예표라고 해석 합니다. 즉 놋 뱀을 본 자는 누구든 지 살았던 것처럼 모든 죄 아래 있는 인생들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십자가는 인류 구원의 완성을 따르고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주님의 갈보리 산위에 십자가는 죄와 죽음과 사망아래 놓여 영원히 저주아래 종노릇 하는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시는 또 다른 희망의 무지개요, 생명의 무지개입니다. 구름 뒤에 숨겨져 대홍수를 만난 노아 가족에게 다시는 물로 심판 않으시겠다는 약속처럼, 갈보리 산 위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사망, 그리고 마지막 심판에서 구원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사랑의 절정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죽음이 없습니다. 심판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무지개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역시 언약의 백성임을 잊지 맙시다. 그리하여 언약에 충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름 속 에 무지개를 두셨듯이 하나님께서 고난과 고통 속에 숨겨진 무지개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갈보리 산위에 매달리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무지개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지고한 사랑임을 깨닫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2017년 8월13일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