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음하지 말라 /마5:27-32
간음하지 말라 /마5:27-32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대한 말씀을 듣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보다 너희 의가 더 낫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첫 번 째로 지난시간에 ‘형제사랑’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형제’란 우리의 핏줄 뿐 만 아니라, 성도들, 그리고 불신자를 포함한 의미로서 모든 사람에 대하여 화목하고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 ‘형제사랑’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두 번 째로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 당시 사회풍습에 의하면 합법적인 이혼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남자가 이혼증서를 써 주기만 하면 이혼하는데 아무런 죄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러한 사회관습이나 풍습에 대하여 제동을 거신 것입니다. 이렇게 이혼 증서를 써 줌으로서 합법적인 이혼이 오히려 더 음란과 방탕을 조장하고 방조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그 로마제국의 사회 풍습이나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살았던 시대는 BC4-AD33년 사이로 로마에서 공화정 시대가 끝나고 황제시대가 열리는 사회였습니다. 로마 초대 황제인 가이사아구스트가 BC27-AD14년 까지 다스렸고 그 이후 티베리우스가AD14-37년 까지 로마의 2대 황제로 등극하여 로마를 다스렸다. 예수님이 살았던 시대는 이 티베리우스가 다스리던 시대였습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으로서 로마의 문화와 정치, 사상이나 법률의 영향 하에 있었다. 로마는 그 당시 세계최고의 나라로 감히 그 어떤 나라도 로마와 대항할 수 없는 강대국이었습니다. 로마는 세계 여러 나라를 정복하면서 그 나라의 종교나 문화를 수용하는 관용정책을 펼쳤습니다. 로마는 전쟁에서 승리할 때마다 북아프리카나 다른 지역에서 노예를 가지고 들여왔다. 남자나 여자노예들을 집으로 들여와 가장 가까운 노예들은 주인의 집 안으로 불러 들였던 것이다. 보통 로마의 부유하고 귀족들은 10여명의 노예들을 부릴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노예들이 남자 주인과 가까이 하다 보니 남자주인의 맘에 들어 사랑에 빠지고 또 적극적으로 구애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의 노예 신분 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로마법은 여자에게는 불리한 법이었다. 남자들은 얼마든지 간통한 여자를 고소할 수 있었지만 여자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여자들은 노예와 함께 약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 제도 속에서 예수님은 이러한 사회적 부당한 제도에 대하여 잘못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로마시대의 결혼풍습이나 성에 관한 문화를 보면 얼마나 타락하고 부패하고 문란 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로마 황제들의 결혼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로마황제들은 자신의 친족들과 결혼 할 뿐 아니라 로마 3대 황제인 칼리굴라는 친누이 동생 두르실라와 결혼하고 그 이후 이혼하고 남의 결혼식 날 신부를 빼앗아 자신의 아내로 삼고 결혼을 4번이나 하였다. 이러한 황제들의 문란한 결혼생활이 로마사회에 영향을 주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로마사회는 성적으로 문란한 사회가 되어 상류층 사회에서는 이런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았다.불임증 아내를 갖는 것이 제일 좋다. 불임을 노리고 모두를 친절하게 대해 준다는 것이다. 자식을 낳은 아내를 두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는 것이다. 상류층 청년들은 윤리의식이 희박해져 16세가 되면 홍등가를 드나들고 연애는 물론이고 남색조차 너그럽게 보아 넘기는 사회였습니다.. 여자들은 20세 이전에 결혼을 하는데 결혼하면 남자와 거의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정부만으로 만족하는 아내가 있으면 그 남자는 행운아 일 정도로 그 당시 여자들의 음란함과 타락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음란이 붓물을 이루는 시대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은 로마서 13:13-14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낮 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또한 고린도전서 6장 18절에서는 "음행을 피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장 5절에 "색욕을 좇지 말고"라고 하였으며, 고린도전서 5장 11절에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 말라 함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음란이 일상이 되는 사회였기에 주님은 더욱 강력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율법에는 “간음하지 말라”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 하였느니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여자’라고 하는 말의 뜻은 원어로 (귀네)라는 말로 ‘장성한 여인’ ‘성적 매력이 있는 타인 의 아내’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보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블레포’ 는 단순히 ‘보다’라는 의미 이상으로 ‘주의를 기울여 관찰하다’란 매우 적극적인 의미를 가진 것으로 여자를 소유하기 위한 음란한 마음을 가지고 응시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본능적인 감정에 의하여 아름다운 여자에게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는 정도가 아니라 성욕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면밀하게 관찰하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음욕을 마음에 품고 이성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행위에 대하여 주님은 이미 간음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행위들이 예수님 당시인 로마시대에 만연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앞서 말씀들인 것처럼 로마가 제국의 시대를 열면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 종교들이 들어와서 로마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똘레랑스’라고 하는 ‘관용정책’입니다. 이러한관용 정책이 로마제국을 하나 되게 하는 힘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용정책이 이민족의 우상숭배와 음란문화까지 수용함으로 로마는 타락하게 되었고 부패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미국도 청교도들에 의해서 세워진 나라이지만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수용하다보니 기독교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오히려 기독교에 적대적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도 이런 일은 있었습니다. 징키스칸이 세운 몽골제국도 각국의 문화와 종교를 수용함으로 제국을 유지하였습니다. 각기 다른 나라와 인종이 다른 민족들이 연합하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소위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정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용정책이 자기만족이나 국가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하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정체성, 즉 종교나 문화를 퇴색시키거나 국가를 무너지게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반발한 것이 최근에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탙퇴한 사건입니다. 유럽이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똘레랑스’ ‘관용’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다 보니 자신의 정체성이나 자기민족의 종교나 문화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영국은 원래 영국성공회가 국가의 종교입니다. 왕이 대관식을 할 때도 대 주교에게 축하취임식을 함으로써 신적인 위임을 통해서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민족이나 국가의 정체성이 유럽연합이 이루어짐으로써 유럽연합의 법규를 지키다 보니 자신의 정체성이 사라지게 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위기를 느낀 장년층과 노년층이 투표해서 유럽연합에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런 영국의 행위에 대하여 ‘반 세계화’라고 말을 합니다. 지금 영국이 이렇게 결정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타 민족과 타 종교를 가진 즉. 이슬람 사람들이 영국에 들어와서 기독교 국가인 영국을 이슬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막대한 오일 달라를 앞세워 그리고 일부다처제를 앞세워 영국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이들 무슬림은 고대 로마 사회처럼 일부다처제를 앞세워 여성들을 성적으로 학대합니다. 예를 들면 남자는 이혼한 것이 간단합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3’번만 나는 당신하고 살지 않고 ‘이혼’하겠다고 말하면 그것으로 이혼이 성립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음란 문화가 로마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21세기에도 음란함과 방탕함이 로마시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간통법이 폐지되었습니다. 왜 폐지되었습니까? 간통법이 시대에 맞지 않는 법이라고 말합니다. 간통법이 폐지되었을 때 춤추는 클럽에 사람들이 미어터졌다고 합니다. 뒤에서 웃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음지에서 죄된 마음으로 했는데 이제는 떳떳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간통을 해도 형사 처벌 받지 않고 돈 가지고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간통죄를 폐지하면 선진국이고 유지하면 후진국이 되는 것입니까?
이러한 음란문화가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은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대중음악 속에 이런 음란한 춤과 노래가 아무렃지도 않게 방송메체를 통해서 여과 없이 안방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음악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불륜을 소재로 하는 비정상적인 것들이 마치 정상적인 삶인 것처럼 제작되어 무분별하게 안방에 까지 들어와 사람들의 의식과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와 영화가 대한민국을 타락하게 하고 방탕한 사회로 가는데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젊은 연예인들에 의해서 계속해서 일어나는 성적인 일탈현상을 우리사회가 얼마나 음란 한 사회 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연일 방송과 신문에서 홍삼수 감독과 김민희 여배우와의 불륜사건이 우리사회에 뜨거운 감자가 되었습니다. 무려 24년의 나이차를 뛰어 넘어 세기의 로맨스가 된 것처럼 떠들면서 어떤 방송인은 이것이 진짜 사랑이 아니냐 하면서 불륜을 미화하고 정당화 하는 뜻한 발언은 얼마나 우리 사회가 죄의식이 없는 가입니다. 방송패널들이 나와서 하는 발언을 들으니 홍감독의 영화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영화에서 김민희 여자주인공으로 출연하고 상대방 남자가 서로 대화하는 대사 내용이 묘하게도 홍삼수 감독, 자신을 투영한 영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김민희 상대남자가 유부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사 중에 자신은 남매를 두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가족으로 딸아이와 수컷 강아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남자의 상의 의상의 옷차림이 홍 감독의 옷차림과 똑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불륜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불륜이 사그라지길 기대 했는데 이번 일은 영화처럼 가족에게 떠난 다는 말도 없이 미국으로 사라진 것입니다. 이번 불륜으로 가정은 파탄 나고 부인과 딸의 상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되도 이것을 방송에서는 불륜이다, 죄악이다 말할지 않고 무슨 진짜 사랑한 것 같다는 둥 불륜을 조장하는 듯한 발언은 우리 사회가 성적으로 너무 관용하고 타락한 사회임을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홍감독이 김민희 배우자와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영화를 찍으면서 급속하게 가까워졌고 그 내용으로 봐서 그런 로맨틱한 불륜을 상상하고 그 영화를 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성의식이 우리 사회를 병들고 가정을 파괴하는데 이르게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여자를 보고 지속적으로 음흉한 마음으로 접근함으로 결국 간음에 이르게 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합니다. 히브리서 13장 4절에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7:3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찌라" 잠언5:15-19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셔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이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과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겁게 하라.“ 이 모든 말씀은 가정을 귀하게 여겨라 는 것입니다. 남편은 한 여자로 만족하고 아내는 한 남자로 귀하게 여기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자게하고 난 이후에 아담에게서 갈비뼈를 뽑아서 하와를 만들었는데 이 때 처음 하와를 보고 난 이후에 뭐라 말했습니까,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로다“ 결혼은 성적인 타락을 막는 제도입니다.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부부는 행복할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성’을 누리는 것입니다. 결혼의 틀 안에서만 ‘성’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른 손이나 눈이 범죄 하거든 단호히 빼어버리고 천국에 가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음란한 마음으로 유혹받거든 단호하게 죄를 거절하고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시록21:8절에서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 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리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혼을 밥 먹듯 하는 시대 속에서 음란과 방탕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이 세대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거룩함과 경건함으로 가정을 지키고 타락한 세상에 높은 도덕적 수준으로 구별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6년 7월17일 청주 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