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말씀/...새믿음의 강단

기독교인의 최고의 가치 마6:19-34

gkffpffndi 2016. 5. 14. 07:45

 

 

 

 

 

기독교인의 최고의 가치 (마6:19-34) 

 

(2016년 5월 15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 설교)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S.A.키르케고르(1813~1855) 그의 책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인간은 순간순간의 선택의 자유의 기로에 서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를 선택할 때 나머지는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매 순간 선택의 순간입니다. 내가 어떤 대학과 직장을 선택하느냐, 결혼하기 위해서 어떤 남자와 여자를 선택하느냐, 그리고 하나님과 세상 중 어떤 것을 선택 하느냐 입니다. 한 번의 선택이 일생을 좌우한다고 하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말도 있습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즉, 어떤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입니다. 

 오늘 중생한 신자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런 육신적인 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더 큰 상위의 개념인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중생한 신자에게 있어서 이런 문제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가 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중생한 신자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주인은 만물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주권자가 되시어 해와 달과 별들의 운행뿐 만이 아니라, 공중에 나는 새들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고 생활하는지 아느냐?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 먹이시고 입히시고 가꾸시고 꽃 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폭풍이 일고 구름이 일어 비를 내려 주시고 따스한 봄바람으로 훈훈하게 하고 노천명시인이 말한 계절의 여왕 5월에 산과 들에 화사한 꽃들과 아카시아 향내가 그윽한 계절을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먹고 사는 문제로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이방인이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믿는 신자가 취할 태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인 칼빈은 이것을 ‘하나님의주권’(Sovereignty)이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하여 다 간여 하시고 간섭하시고 주장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기계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우주의 법칙 안에서 자동적으로 돌아가도록 방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선하신 뜻과 목적대로 이 우주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십니다. 

 그러기에 이방인들처럼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에 함몰되어서 좀 더 상위의 가치인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 즉 믿는 자의 사명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가 확장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누구나가 자신들이 귀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배우는 것이고 학교선생님들에게 있어서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고 기업하는 사람들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많은 이윤을 내는 것이고 농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많은 수확을 거두는 일일 것입니다. 국가 공무원이나 경찰관이나 국회의원들이 국가와 나라를 위하여 봉사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듯이 기독교인들의 최고의 가치와 사명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개인이나 가정적인 모임 보다 ‘하나님 나라의 일’인 주님의 몸된 교회의 공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자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나보다 부모나 형제나 자식을 더 소중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최상위의 가치에 두고 살아가는 자에 의해서 확장되고 전파되는 것이지, 차선이나 그 이하에 두어서는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지 않습니다. 성경은 물질이 악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질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긴요한 것이고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물질의 사용에 대해서는 분명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물질이 주인이 아니고 관리인이라는 의식입니다. 물질의 주인이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인식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신 물질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유한 자의 탐욕을 경계 한 말씀이 성경에 곳곳에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말하기를 선한 선생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에 대하여 주님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고 말하자 이 부자청년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이것을 어렸을 때부터 다 지켰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나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마치자 부자는 근심하고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중요합니다. 24절에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마치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은 가난한 자에 대한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보면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도울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물질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땅의 주인이 하나님 인 것처럼 이 땅에 소산물인 물질 역시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이 땅에 재물을 쌓아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물을 쌓아두어야 할 곳은 하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곳은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하나님 나라에 쌓아두는 것은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물질을 쌓아두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다고 하는 부자청년에게 그에게 확실히 부족한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물질에 대한 탐욕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물질이 없으면 삶을 누릴 수가 없는데 그러면 물질을 멀리하라는 말이냐? 아닙니다. 그것은 물질은 중생한 신자에게 있어서는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섬기는데 하나의 도구요, 수단이지. 그게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선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나 자신의 욕망과 탐욕만을 추구하고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면서 사치하고 방탕하게 물질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그러면 거듭난 신자는 물질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까? 저는 18세기 영국에 신앙부흥운동으로 타락한 영국사회를 변화시킨 요한 웨슬리의 글을 소개 하고자 합니다. 그는 설교에서 돈 사용의 세 원리를 설교했습니다. 제 1원리는 “열심히 벌라”(gain all you can)는 것이다. 웨슬리는 크리스챤들이 금을 사지 말고 이웃에게 상처를 주지 말고 자신의 사업을 위해 이웃의 사업을 해치지 말고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웨슬리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재능을 사용하여 부지런히 돈 벌기를 또한 제안한다. “어떠한 일도 내일 까지 미루지 말라! 오늘 할 일을 오늘에 하라!” 제2 원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저축하라”(save all you can)는 것이다. 웨슬리는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맛을 즐기는 기쁨을 더하기 위해서 집을 사치스럽게 장식하기 위해서 그리고 값비싼 그림과 책을 사기 위해서 돈을 낭비해서는 안된다. 자녀들을 위해 지나치게 낭비하는 것은 돈을 바다에 던지는 것과 같다고 웨슬리는 말했다. 제3원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나누어 주라. 앞의 두 가지. 돈을 많이 벌어서 많이 저축하여야 하는 이유는 결국 선한 일을 많이 하기 위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여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이유, 그리고 그것을 저축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선한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웨슬리는 거듭난 신자는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하나님의 선한 사업을 위해서,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큰일을 하기 위하여 입니다. 모으는 것, 저축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그것이 선한 일을 위해서 사용되지 않으면 선행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돈을 바다에 던지거나 땅에 파묻어 버리는 거와 같다고 웨슬리는 말했습니다. 웨슬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자신이 먹고 입는 것을 위해서 돈을 써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아내, 자녀 그리고 집에 딸린 사람들을 위해 돈을 써야 한다. 그런데 더욱 안일하고 편리하게 돈을 사치스럽게 사용해서는 안되고 꼭 필요한 필수적인 것을 위해서만 돈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의 식구들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 외에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를 하나님께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을 위해 돈을 사용하기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기 위해 돈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합니다. “기회가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라.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되 십분의 일, 십 분의 삼, 십 분의 오가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하나님께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기신 돈으로 굶주린 자를 먹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며, 나그네 된 자를 돕고 과부와 고아를 돌아보며, 그리고 모든 인류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도록 부탁하셨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예수님께서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한 것은 거듭난 신자는 개인의 안녕과 사치를 위해서 사용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사용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보물을 하늘나라에 저축하라는 것은 첫째는, 거듭난 신자로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헌금을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웃을 구제하고 나누어 주는 것을 말합니다. 

 딤전6장 17-19절에 보면,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그러기에 거듭나 신자는 분명합니다. 오늘 날 물질을 ‘신’으로 삼고 살아가는 물질만능주의 세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빛과 어둠, 물질과 하나님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습니다. 두 주인을 섬기지 않습니다. 세상들은 물질을 신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물질에 노예가 되어서 살아갑니다. 물질을 주인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의 신은 물질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람들이 신처럼 섬기는 물질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 중생한 신자는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가치, 상위의 가치, 공적인 가치, 먼저 우선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 본문 33절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지금부터 약 70년 전에 저 평안북도 정주에 백(白)씨 성(性)을 가진 사람 하나가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이 사람이 다니는 교회에서 예배당 건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예배당 짓는데 무엇을 드릴까 생각하다가 재산목록 제1호인 하나밖에 없는 “소”를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소가 없으니까 직접 “가래”를 끌면서 “논일”을 하였습니다. 그 광경을 지나가던 선교사님이 보았습니다. 선교사님과 백씨 성을 가진 그 사람이 서로 대화를 하는 중에 "선교사님"이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님 마음에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뭐 좀 도와드리고 싶은데 도와 드릴 것이 없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백씨가 하는 말이 "저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애가 너무너무 공부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형편이 어려워서 도저히 공부를 시킬 수가 없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선교사님이 주소를 적어주면서 한번 서울로 보내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젊은이를 서울에서 만나보니까 정말 괜찮은 젊은이였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이 이 젊은이를 미국 선교본부에 추천을 해서 미국 유학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이 젊은이가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서 연세대학교총장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백낙준박사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소 한 마리 받으시고 그냥 마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중생한 신자는 물질을 주인으로 삼고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마지막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한 번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를 예수님께 내어드린 나귀주인처럼 주님이 요구하고 필요할 때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자가 거듭난 신자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중생한 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최고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물질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입니까 중생한 신자라면 이제라도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최고의 가치로 두고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필요를 주님이 채워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