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요21:1-14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요21:1-14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제자들은 허전한 마음으로 예전에 고기 잡았던 베드로의 고향인 갈릴리 지역, 디베랴 바다로 돌아 왔습니다. 배운 것이 고기 잡는 것이니 자연스럽게 디베랴 바다에 돌아와서 어부로 돌아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 가에 원래 자신의 직업인 어부로 돌아가자 그와 함께 했던 사람은 디두모라하는 도마,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다른 제자 둘도 따라 나섰습니다. 이들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돌아올 때 갈릴리 바다에는 아침 햇살이 밝아 오는 시점이었습니다. 4절에 “날이 새어 갈 때에”라고 하는 말이 이것을 말해줍니다. 베드로가 그 전 날 밤에 자신이 갈릴리 바닷가에 가겠다고 하니 나머지 제자들이 따라 나서서 밤새도록 왕년에 고기 잡던 실력을 발휘해서 고기가 있을 만 한 곳은 다 그물을 내려 보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으니 얼마나 허전했겠습니까? 혹자는 베드로가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녔으니 고기 잡는 방법이나 기술이 미숙이 한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고기잡이 생활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 잠시 쉬었다고 해서 갈릴리 바다에 어디에 고기가 많은 지를 잃어 버렸겠습니까? 제자들은 보통 낙심이 아닌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베드로의 어깨는 무척이나 무거웠을 것이고 자신을 믿고 따라 나선 동생들에게 여간 미안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에게 한 순간에 좌절과 절망이 찾아 왔습니다. 당장 허기진 조반을 채워 줄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으니 그의 마음은 낙심천만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갈릴리 바다에서 만났을 때도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 보았지만 빈 배만 안고 돌아왔는데 오늘도 역시 그 때와 똑 같은 상황입니다. 3절에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로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니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으니” 이 말씀을 우리 인생에 적용해보면 이렇습니다. 지난 수년 간 아니 수 십 년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살아 왔지만 남은 것이 없고 부채만 늘어가는 현상입니다. 참으로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부지런히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일해 왔지만 갈릴리 바다가의 제자들의 배처럼 빈 배만 남아 있는 인생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자화상이요.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지난 한 평생 가족을 위해서 자녀들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 왔지만 가족들은 자신을 외면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질병까지 얻어 건강을 잃고 노년에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세상을 비난하고 원망하다가 마지막에 쓸쓸히 고시촌이나 옥탑 방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작년엔가 이런 일이 서울에서 있었지 않습니까? 반 지하에서 살던 분이 마지막 생을 마감하면서 집세 밀린 것 하고 자신의 장례비용 몇 십 만원 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 말씀의 요지는 주님이 없이 밤새도록 고기를 낚기 위해서 그물을 던져 보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까? 예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삶에 주님이 없었다 이 말입니다. 주님을 종으로 알고 함부로 부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주인처럼 살아온 것입니다. 우리인생에 예수가 없는 인생은 실패 할 수밖에 없고 절망 할 수밖에 없고 빈 배만을 가지고 돌아 올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바다에서 수십일 동안 사투를 벌여서 큰 물고기를 잡았지만 상어 떼에게 다 뜯기고 앙상한 물고기 뼈만을 가지고 돌아온 꼴입니다.
디베랴바닷가에서 제자들이 빈 배로 돌아 온 것은 그들이 고기 잡는 방법이나 기술,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배에는 예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아십시오. 아무리 많은 지식과 경험, 충분한 자산이 있다 할지라도 예수 없는 인생은 실패요, 빈 배 일 뿐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실패의 밤, 절망의 밤, 낙심의 자리에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바로 그 실패의 자리에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고기 잡는 대 여념이 없어 자신들 앞에 서 있는 예수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엠마오를 내려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없나 이다” 그러면,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여기서 제자들은 주님이 배 오른편에 던지라는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지금 어디서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누구 음성인지도 모르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니 그물에 고기가 가득한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예수님인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했습니까?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았기 때문입니다. 실패 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백방으로 노력도 다 해보았습니다. 배 왼쪽에도 던지고, 배 오른 쪽에도 던지고 얕은 곳에도 던지고 깊은 곳에도 던져 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이 사람 말도 들어보고 저 사람 말도 들어보고 다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치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이 병원 저 병원 용한 의사, 신통한 의사, 저명한 의사, 명의를 다 찾아보았지만 아무런 효험이 없고 병이 다 중해지고 있던 돈도 다 허비하고 있을 때 예수님을 만난 거와 같습니다. 갈릴리 바다를 손바닥처럼 알고 있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 이렇게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주님이 개입하시는 시간입니다. 주님이 역사하시는 시간이요.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시간입니다. 아직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는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자신만만해서 그 어떤 무엇을 이루면 그것은 자기의 자랑이 될 것이고, 자신이 능력이 있고 지식이 있고 경험이 풍부해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생각하지, 하나님이 하셨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을 포기하고 주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을 때 주님은 언제나 개입하시고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대로 순종하였더니 배에 그물에 고기가 가득하여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기적을 체험 하고 난 이후에 그들의 눈이 뜨였습니다.
맨 먼저 요한이 “주님이시다”라고 외침니다. 주님을 먼저 안 자는 요한이었지만 이 말을 듣고 행동을 제일 먼저 한 사람은 역시 행동주의자인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는 요한의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채로 바다에 뛰어 들어 예수님께 달려왔습니다. 제자들이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은 지금까지 자신의 개똥철학으로 삶을 살아 왔는데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절대시 하고 살아왔지만 그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상식과 경험과 지식을 뛰어넘은 초자연적인 현상 앞에서 그들은 무릎을 끓고 경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내가 가진 경험과 상식과 지식, 이성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 분이 창조주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 분은 나보다 전지하시고 못하시는 것이 전혀 없는 전능자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마16:15-16절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묻는 물음에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대답했는데, 이들은 모두가 사람입니다. 주님은 그러면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6에“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즉,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이 듣고 싶어 했습니다. 당신이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셔서 여러 가지 이적과 기적을 살리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의 선지자로 인식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아직도 4대 성인 중 한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선지자로만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이천년 전에 이 땅에 살다가 죽은 자로 알고 있기에 예수님을 내 삶에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지 않기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로 알고 믿습니까? 죽은 자로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며 우리의 삶속에 동행하시며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느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토록 살아계셔서 우리의 삶에 계시면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으로 인식한다면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 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했을 때 순종했기에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물을 떠서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더니 처음 포도주보다 더 나은 포도주가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가 철옹성인 여리고성이 무너뜨릴 대 여리고성은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 때도 인간의 방법이나 계산이 동원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동원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 주위를 군사로 하여금 돌게 하되 하루에 한 번 씩 여리고 성을 돌고 마지막에 일곱 번 돌고 언약궤를 앞세우고 제사장들을 나팔을 길게 불 때 백성들이 큰 소리로 함성을 지르면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어디 전쟁하는 전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그대로 행하니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앞에는 홍해 뒤에는 애굽 군대가 쫒아오는 백척간두,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다를 향하여 지팡이를 내밀자 밤새 동풍이 불어와서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낳은 독자 이삭을 제단에 드리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자손들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가의 모래처럼 흥왕 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람장군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자신의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서 시리아에서부터 먼 길을 지나 이스라엘의 엘리사에게 왔다. 하지만 엘리사는 나오지도 않고 종을 보내어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했다. 그는 화가 잔뜩 나서 그냥 돌아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종의 말을 따라 엘리사가 시키는 대로 순종하였더니 어린아이 살처럼 깨끗하게 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와서 마라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 샘의 물을 마시려 하였지만 마실 술 없는 물이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한 나무를 그 물에 던졌더니 그 물이 마실 수 있는 물로 변해서 목마름을 가실 수 있었습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하면서 살아왔다면 그이 인생이 아름답고 축복된 삶이 되었을 텐데 괜스레 자신의 고집대로 살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습니까?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명을 재촉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면 내 삶이 풍성해지고 여유롭고 기쁘고 즐거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내 이성과 경험과 지식과 상식에 맞지 않아도 나보다 훨씬 크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내가 믿는다면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나 자신의 고집과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고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하는 것은 첫째,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둘째, 자신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가득 찬 물고기를 끌어올려 세워보니 153마리였습니다.
여러분! 모나미 볼펜 아시죠? ‘모나미’는 불어로 ‘나의 친구’라는 뜻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볼펜입니다. 그런데 이 볼펜을 자세히 보면 153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이 153숫자가 쓰여진 일화가 있습니다. 모나미 회사의 창업주는 송삼석 회장입니다. 이 분은 진실한 기독교인입니다. 그가 사업을 하다가 실패의 밤을 만났습니다. 그래도 믿음이 있어서 기도원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던 중 그가 회개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첫째, 주일을 소홀히 한 것,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둘째, 십일조 헌금을 하지 않은 것, 이제부터 십일조 하겠습니다. 셋째, 경건한 삶을 살지 않은 것. 그리고 회개기도 하고 난 이후에 성경을 펼쳤는데 요한복음21장1-14 오늘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나미153 볼펜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세계적인 볼펜회사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난 삶속에서 실패의 밤을 경험했습니까? 아픔을 경험했습니까? 건강을 잃었습니까? 직장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까? 아직도 캄캄한 밤이라고 생각되십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인생의 어둠을 빛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실패를 성공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고통을 축복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순종할 때 2016년은 여러분에게 기적의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 2016년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 목사 1월10일 주일설교